내女子를 울린 볼품없는 손톱깎이

2004. 11. 22. 16:21........ 茶 ........





내女子를 울린... 볼품없는 손톱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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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종이커피나 마시면서 마로니에 풍경이나 담아볼까... 하고 나간 대학로는 이미 노동집회로

사람도 사람이지만은 그 무식한 스피커에서 나오는 파열음으로 상당히몸살을 앓고 있었고

우리는 아니다 싶어 가까운 황학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인도, 넘치는 행인, 청계천공사로 인한 횡한 건물들....

해는 뉘엿거리고 오후내내 이리저리 걷다 지쳐 앉은

곱창골목 한 낡은 곱창집.

사진한장 건지지못한 황학동.

그러나 우리는 이날

이 낡은 곱창집 귀퉁이에서

귀한걸얻어가게된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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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은 익어가고 술이 한잔한잔 비워질때까지만 해도 보이지않던, 느껴지지않던 인기척,

바로 오른편 비닐막사안에 초라한 좌대를 펴고

누가봐도 선뜻 살만한 물건이 아닌 작은 수첩과 다이어리를 내놓은

영감님 한분이 앉아계셨던 것이었다.

아내와 난 동시에 어찌 저런곳에 좌판을 펴고 계신걸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길거리도 아니고 곱창집 안, 한귀퉁이에 펼쳐논 물건을 누가 사갈까나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서는 순간이었다.

곱창도 맛있다며 집어먹고, 쐬주도 맛있다고 털어넣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며 어두워지는 시장풍경을 애써 즐겨보려 했지만

한번 눈에 들어온 그 영감님이 머릿속에서 떠나질않아

우린 둘다 슬쩍슬쩍 영감님을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떨군 고개밑으로 피워문 담배하나...

흰 일회용 소주컵만 들려올라오는 손동작하나...

종일 한개도 안팔렸을 수첩들 하나하나....

아...십알,

우리의 대화는 이미 정상적인 부부의 대화가 아니였다.

젖가튼 세상 욕도하고 이론상 영락없는 이상세계인 사회주의를 얘기하고

민주주의사회복지의 홍보용 정책을 개껌 씹듯이 질겅거리고

걸인과 노동능력이 없는 빈민과 노동의지가 있는 빈민의 지원정책을 달리해야 한다는

서투른 분기로 이미 우리는 뜨거워져 있었다.

우리가 이런다고 머가 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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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일어섰다.

그리곤 영감님 좌판앞에 서서 큼지막한 다이어리를 하나 골랐다.

할아버지 이거 얼마에여.

유....육천원.

네. 여기여.....잔돈은 넣어두세요.

어....어어...안되는대.

영감님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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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로 돌아온 아내와 난

또한번 세상에 대한 작은 욕설로 쏘주를 삼켰다.

그 다이어리는 한달밖에 남지않은 '2004'가 선명하게 찍힌 것이었고

우리는 한달밖에 남지않은 다이어리를 육천원에 팔고있는 세상모르는 영감님이 미웠다.

그래서 돈 어떻게 벌겠냐구...영감님이 미웠다.

너무너무 미워서 아내는 벌게진 눈으로 쏘주를 삼켰다.

세상모르게 키워서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세상.

세상모르게 자라서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세상.

아...저뜨, 좆까튼 세상.

쏘주도 안주도 남아있지 않을무렵...

영감님이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살짝내민 손.

그 까맣고 갈라진 손바닥위에 올려진

볼품없는 손톱깎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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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女.子.가.왈.칵.울.었.다.






한영애 - 목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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